[슈종] 형 친구





그러니까 김민석은 종종 김종대가 데려오는 친구였다. 뭐라더라. 초등학교 때 다니던 수학 학원에서 만났다던가. 같은 학교였지만, 서로 다른 반이라서 잘 몰랐다가 학원에서 친해졌다고 했다. 김종대는 두 달 정도 다니다가 수학 학원을 그만 뒀고, 김민석은 그 후로도 계속 다닌다고 했다. 어차피 이 동네 초등학생들 학원이란 게 다 고만고만해서 학원 다니는 틈틈이 서로 만나 몰려다니고 노는 건 한 번 친해진 다음엔 쉬웠다.


그 인연이라는 게 또 묘한 게, 분명히 김종대랑 김민석이 마땅히 둘이 세상 제일 가는 단짝이 될 만한 이유도 없었고, 실제로 그렇지도 않았단 말이다. 그런데 김종대랑 제일 꾸준히 오래오래 만나는 친구는 김민석이었다. 둘이 중학교도 다른 데로 갔고, 고등학교는 같은 데로 가봤자 문이과로 금방 갈렸고, 이젠 대학도 서울 북쪽에 있다는 것 외엔 공통된 바운더리가 없었단 말이다. 그런데 김종대의 가장 오래된 소꿉친구는 김민석이었다. 한 번도 김종대랑 가장 친한 친구로 곁에 있었던 적이 없으면서, 참 인연이 가늘고도 길었다.


오래된 사이는 친구인 당사자와는 상관 없이 가족인 우리에게는 김민석이 가장 편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종대는 거리낌 없이 친구를 집에 들이는 타입이었고, 초등학교 때는 김민석도 뻔질나게 우리 집을 드나들었다. 직장 때문에 늘 바빠 밤까지 집에 없던 우리 부모님과도 안면을 튼 사이가 참 드물었는데 그 중에 김민석이 있었다. 특히 우리 아버지가 이름과 얼굴, 특징을 매치시키는 사람은 김민석이 유일했다. 그리고 일하던 부모님과 달리 늘 김종대보다 나이가 어려 좀 더 오래 집에 붙어 있던 나는 김민석을 정말 많이도 봤다.







그래서 오늘처럼 집에 들어오자마자 거실 소파에 늘어진 김민석을 봐도 그리 놀랍진 않다.


"안녕."
"...안녕."


김종대 친구 중에 내가 반말을 하는 사람은 손에 꼽는데, 김민석을 빼고 다른 형들은 다 성격이 워낙 서글서글하고 친근하기 때문이다. 김민석은 딱히 나한테 친해지자며 군 적도 없었다. 서로 어색하게 공기처럼 있었는데, 그냥 어릴 적부터 봐서 말을 편하게 한다.


"우리 형은?"
"화장실에서 샤워."
"아."


그러고 보니 멀리서 물소리가 들린다. 아무리 편해도 그렇지 손님 데려와놓고 혼자 샤워를 하냐.


"너 밥은."
"아직 안 먹었지."
"그럼 종대 나오면 같이 치맥하러 나갈래?"
"그래."


그리고 대화가 끊겼다. 서로 살갑게 구는 타입이 아니라서 십 년을 넘게 보고도 이 모양이다. 냉장고에 가서 문을 여니 사이다가 새로 하나 있다. 김민석이 어느 순간부터 우리 집에 놀러올 때마다 사오는 거다. 웃긴 게, 사와놓고 자긴 안 마신다. 김종대나 내가 손님맞이라고 한 컵 따라줄라 치면 자기는 됐다고 맹물이나 찾는다. 그럴 거면 왜 사왔지. 김민석은 아마 평생 이렇게 우리 집 놀러올 때 손님처럼 굴 거다. 손님이 맞긴 하지만.

뭐, 나야 사이다나 콜라 좋아하니까. 김민석이 사온 미지근한 사이다를 컵에 따르고 냉동실에서 얼음을 두 개 꺼내 동동 띄웠다. 그리고 할 거 없는지 김민석은 부엌을 왔다갔다 하는 나만 본다.


"형."
"응."
"뭐 마실래?"
"난 그냥 물."
"알았어."


김민석이 심심해 보여서 김종대 얼른 씻고 나와라 고사를 지내는데, 나한테서 물컵을 받은 김민석이 입을 열었다.


"근데 너 저거 뭐야?"
"뭐가?"
"저거."


김민석이 고갯짓으로 가리킨 곳을 보니, 요즘 내가 빠진 나노블럭이다. 좀 유치하긴 한데 좋아하는 영화나 애니 캐릭터들도 나오고, 친구꺼 같이 만들다가 내가 빠진 거다.


"요즘 하는 거. 나노블럭이라고, 저거 유행이야."
"일회용이잖아."
"그래서 안 비싸잖아."
"비싸구만..."
"형이 맨날 마시는 커피 값이나 이거나."
"...너 내가 맨날 커피 마시는지는 어떻게 아냐."
"맨날 봤으니까 알지."


그리고 김민석은 지금 내 대학 선배이기도 하다. 김민석은 공대, 나는 예대. 그리고 공대랑 예대는 별관 건물 하나 끼고 서로 인접해 있다.


"너 공학관쪽은 얼씬도 안 하잖아?"
"형이 공학관만 돌아다니는 게 아닌가 보지. 맨날 보이던데."
"그래?"


내 말에 김민석은 물컵을 바로 들이켰다. 빈 컵을 돌리면서 물로 가득찬 입을 우물거리는 게 딱 무언가 생각하는 모양새다. 나도 뜨문뜨문 김민석을 오래도 봤으니, 이제 김민석의 습관은 몇 개 안다. 눈썹을 찌푸리는 걸 보니 뭐가 맘에 안 드는 거다.


"...근데 난 너 왜 못 봤지."
"어?"
"허얼, 김쪼닌 왔냐? 언제 옴?"


김민석의 혼잣말이 뭔가 싶은 순간, 문이 열리고 김종대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형은 왜 손님 데려오고 혼자 샤워하고 난리냐?"
"아씨, 아까 김민석이랑 카페 갔다가 스무디 쏟아가지고오! 티셔츠도 젖었는데 완전 배랑 팔이랑 여기, 여기도 다 끈적거리는 거야 진짜!!"
"형이 바보네."
"내 스무디 아니거든! 괜히 남 주려고 사다가 망한 거지!!"
"그럼 누구 껀데?"
"그야..."
"야, 너 나왔으면 나가자."


김민석이 곧장 일어섰다. 김종대가 자주 재잘거리니까 김민석은 이렇게 종종 말을 적당히 끊는다. 김종대도 좋다고 지갑을 챙겨들었다.


"종인이 저녁 안 먹었대."
"허얼. 그럼 나 오늘 쟤한테 대체 얼마나 쓰는 거임?"
"아까 니 돈도 아니었잖아."
"그래도!"
"그래서 쟤 보고 돈 내라고 하게?"


둘이 티격태격하는 걸 들으면서 가스 밸브나 베란다 문 같은 걸 확인했다.







"맞다. 종인아."
"나?"


김종대는 현관문을 열고 벌써 나가서 엘리베이터를 잡고 있고, 김민석 혼자 문을 열고 서 있다.


"내가 치킨 살 테니까."
"응."
"나 저거 하나만 주라."
"저거?"


김민석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내가 조립한 나노블럭들이 있었다.


"응. 저거. 노란색."
"저건 왜?"
"그냥. 너도 일회용이라며. ...싫으면 말고."
"아니, 안 싫어. 그래."


내가 만든 길쭉한 미니언을 김민석에게 주니까, 김민석이 웃는다. 아까는 별 거 아니란 듯이 굴어놓고 귀여웠나 보지.


"설명서도 줄까? 뽀개서 가져갈래?"
"아니. 니가 만든 거 그대로 가져갈래."


대체 그러면 무슨 재미지. 그냥 미니언을 좋아하나. 김종대가 엘리베이터 내려간다고 소릴 질러서, 물어보진 않고 그대로 나갔다.













맥주도 한 잔씩 하고, 김민석은 집으로 돌아갔다. 사실 셋이 자주 이렇게 식사를 하곤 한다. 계획한 건 아니고, 김종대가 김민석이랑 같이 밥이라도 먹으려고 데려왔다가 내가 밥을 안 먹으면 깍두기로 동생 하나 껴주는 그런 거다. 그래서 밥을 먹을 땐 대개 김종대랑 김민석이 나는 모르는 이야길 하고, 난 돈 안 내는 대신 조용하게 밥만 우걱우걱 먹고 마는 거다. 그래서 둘이 대화하는 모양새를 보게 되는데, 진짜 서로 꼭 맞는 소울메이트도 아니고, 극과 극이라 끌리는 사이들도 아니다. 어떤 건 맞고, 어떤 건 안 맞고. 다행히 서로 이야기하는 스타일이 잘 맞는 그런 사이다. 김종대는 편한 사이 앞에선 말을 와구와구 떠들다가 갑자기 조용해지고, 조용하다가 또 와구와구 떠드는데, 김민석은 김종대가 떠들 땐 적당히 맞장구만 치며 들어주고 김종대가 조용해지면 그제서야 아까 김종대가 폭주한 대화 화제 중 한두 개를 꺼내서 두런두런 이야길 한다. 그리고 다시 김종대가 신이 나면 김민석은 가만히 들어주고. 근데 이게 김민석이 맞춰준다기보단 그냥 김민석은 내내 조금씩 꾸준히 이야길 하고, 김종대는 말하는 양이 널을 뛰는데 우연히 합이 맞는 거다. 저래서 오래 가나보다 싶어서 혼자 치킨을 뜯으면 내가 제일 잘 먹게 된다. 그리고 그걸 보고 김종대가 자긴 뭘 먹었냐고 찡찡대면 식사가 끝난다. 늘 그렇게 흘러간다.


오늘도 그렇게 치맥을 하고, 맥주를 마신 김종대가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술이 약하진 않아서 저게 취한 꼬라지는 아닌데, 술이 한 모금만 들어가도 김종대는 늘 기분이 한 톤 올라갔다.


"야, 김쪼닌."
"왜."
"나 스무디 좀 사줘라."
"아까 못 먹어서 그러냐?"
"그건 내가 먹을 게 아니었다니까? 치킨도 사줬잖아. 그러니까 얼르은!"


김종대의 투정에 마침 아직 불이 켜진 24시간 카페로 들어섰다. 지갑 안 가져왔다고 했더니 결국 김종대가 지갑을 꺼냈다. 이러려고 늦게 태어났다 싶다.


"근데 형은 스무디 잘 안 먹잖아. 맨날 커피만 마셔놓고."
"아, 그게에- 아까 쏟으니까 너무 아까워서, 갑자기 스무디가 먹고 싶은 거야."
"아까 그럼 스무디는 왜 샀는데?"
"너 먹으라고."
"나?"
"엉. 너 아마 집에 있을 시간이라구, 김민석이 너 사다주자고 걔가 아까 산 거야. 내가 들다가 쏟은 거지."
"그래?"


그러고 보니, 김민석은 종종 날 이렇게 챙기곤 했다. 사람 성격이 섬세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스무디를 쪽쪽 빨던 김종대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야."
"왜."
"그러고 보니까 넌 걔한테 좀 고마워해야 돼. 맨날 그렇게 데면데면 굴지 말고. 알았냐?"
"뭔 소리야..."
"김민석이 너 얼마나 아끼고 챙기는지 아냐? 엉?"
"갑자기 왜 그러는데?"
"야. 김민석이 맨날 올 때마다 너 사이다 좋아한다고 사이다 사오고, 너 뭐 좋아하냐고 묻고, 지나가다가 너 좋아하는 거 있으면 니 얘기 꺼내고. 어? 표현이 없어서 그러지 너 얼마나 아끼는데, 새끼가 맨날 김민석한테 그렇게 무뚝뚝하게 굴고. 엉?"


생각보다 김민석이 나 많이 챙겨주는구나. 놀랐다. 사람이 원체 알게 모르게 챙겨주는 건 알았지만. 김종대가 빨대를 잘근잘근 씹으며 툴툴거렸다. 근데 그렇게 세세하게 신경써주는 줄은 몰랐는데. 말을 해야 알 거 아냐. 나도 빨대를 잘근잘근 씹게 된다.


"근데, 그건 또 왜 갑자기 말하고 그러는데..."
"생각해보니까 내가 억울해서."
"억울한 건 또 뭐야."
"옛날부터 김민석이 얼마나 너 챙겼는데. 아직도 벽 치고 그러니까 답답하고 억울해서 그러지."


김종대 핀잔에 대꾸할 거리는 없는데, 사실 나만 벽 치나? 김민석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걔 조만간 한국 떠나거든."
"뭐?"
"조만간이라봤자 두 달 후긴 한데. 아무튼 거기 대학원 간다고. 여차하면 거기서 취직도 하면 좋고. 그래서 생각하니까 자꾸 챙겨주는 애새끼가 맨날..."


김종대가 궁시렁거리는데 하나도 안 들린다. 김민석이? 근데 왜 아무 말도 안 해? 나 챙겨준다는 사람이 왜 그런 건 말 안 해? 그보다 둘이 왜 오늘 그런 얘기 한 번도 안 했어? 나는 왜 이제 알아? 갑자기 억울하고 열받는다. 답답해야 할 사람은 나다.


"형."
"왜 임마."
"나 민석이 형 번호 좀."
"엉?"
"아 쫌, 내놔 봐. 빨리."
"갑자기 왜 이래?"
"빨리이!"












김종대를 집에 들여보내고, 집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 보니 그렇게 오래 얼굴을 봤으면서 번호도 서로 몰랐다. 김민석 번호를 저장하고, 잠시 심호흡을 했다. 뭐지. 나 왜 갑자기 김민석이 외국 간다니까 열이 받지? 화닥화닥 오른 열을 식히기 위해 손부채질을 했다. 그냥 오며가며 얼굴만 익힌 형 친구 아닌가. 왜 섭섭하지? 미쳤네.


전화를 거니, 얼마 안 가 곧장 김민석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고 보니 낯선 번호를 잘도 받네.


-여보세요.
"형."
-응. 웬일이야?
"저 종인인데요."
-응. 알아.
"알아요?"


김민석이 잠깐 웃는다.


-응. 원래 알아.
"...그래요?"
-근데 무슨 일인데?


처음으로 수화기 너머로 듣는 김민석 목소리는 실제로 들을 때보다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았다. 꽤 톤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김종대가 속상하다고 칭얼거릴 때 나직하게 맞장구쳐주는, 딱 그럴 때 목소리 같았다.


"...그, 있잖아요."
-응.
"형."
-응.


정작 전화를 거니, 할 말이 없었다. 난 왜 아까 머리에 열이 올랐지. 왜 지금 전화를 걸고 있지? 머리가 정리가 안 되니까 입 밖으로 풀어나올 거리가 없다.


"...그, 미니언 좋아해요?"
-어?


이 얘기가 아닌데.


"어... 아까 가져간 거, 그거 레고 미니언."
-이게 미니언이야?
"몰라요?"
-몰라. 들어만 봤어.
"그럼 왜 가져갔어요?"


이번엔 김민석 쪽이 한참 말이 없다.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방금 내가 한 질문이 무언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의 실마리가 될 것 같았다. 김민석 대답을 기다리며 나도 숨을 죽였다.


-그냥. 기념으로.


그 말이 내가 들은 김민석의 마지막 목소리다.

















김종대는 김민석이 출국하는 날, 김민석을 배웅 가겠다며 아침 일찍 일어나겠다더니, 그냥 김민석이 떠나기 전날 만나서 밥 한 끼만 먹고 돌아왔다. 애인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고, 눈물바람 불 것도 아닌데 어정쩡하게 공항 따라가서 뭐하겠냐며 둘이 대충 합의를 봤다고 했다. 나중에 카톡으로 도착하면 연락하겠다고. 원래 둘 사이가 이 모양이었다. 아마 김민석과 김종대는 이렇게 가늘고 길게 인연을 쭉 이어갈 것이다. 아니다. 어쩌면 이번엔 그 인연이 끊길 지도 모르겠다. 물리적 거리의 힘은 생각보다 크니까. 굳이 생사를 꼬박꼬박 열심히 챙기는 사이가 아니었다. 김종대 어깨 너머로 김민석을 만나던 나는 더더군다나 이제 만날 일이 없게 되었다.



"야, 김쪼닌."
"뭐."
"어제 김민석이 너 선물 주고 갔다."
"나?"


김민석이 출국하는 날, 아침잠에 눈도 못 뜨는 날 보던 김종대가 혀를 찼다.


"이게 뭐가 이쁘다고, 별..."


내 이마 위로 가벼운 상자가 올려졌다가 곧이어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김종대는 곧장 문을 닫고 나가고, 나는 눈을 겨우 떴다. 바닥에 굴러떨어진 상자는 나노 블럭이었다.




[내가 가져간 거.]



짤막한 메모가 상자에 적혀있었다. 나노 블럭은 김민석한테 내가 준 딱 그 미니언 모양이었다.


"일회용이라니까... 뭘 또 맞춰..."


상자를 책상 위에 올리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가늘고 길던 내 첫사랑이 끝났다.














=

To. 카이의개님~><


150901 9월의 첫날
웬공님(@when_0_top)께 받은 선물 슈종슈카♡
성공하지도 못한 티켓팅해드렸다고 ㅠㅠ 받았다 ㅠㅠ 천사아니실까

WRITTEN BY
.ㅅ.
카이 종인 팬 블로그 프리뷰 저장 호모 좋아합니다

,